이불킥 모음.zip
새벽 3시, 잠도 안 오는데 짝사랑 인스타를 염탐하고 있었다. 위로, 위로, 끝없이 스크롤을 올려 5년 전 사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러다 손가락이 미끄러졌는지, 그 시절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말았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0.5초 만에 취소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걸 안다. 좋아요는 취소해도 상대에게 알림은 이미 갔으니까. 그날 밤 한숨도 못 잤다. 다음 날 아침, 두려워하던 톡이 왔다. "혹시… 내 옛날 사진 봤어요?" 새벽에 5년 전 게시물을 봤다는 건, 밤새 염탐했다는 빼도 박도 못할 증거였다. 나는 답장 대신 폰 전원을 꺼버렸다. 그렇게 도망친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용기를 내어 손편지 대신 장문의 고백 메시지를 썼다. 며칠을 다듬은 진심 어린 글이었다. 마지막 줄까지 완성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전송했다. 그런데 보낸 뒤 다시 읽어보다가 경악했다. 휴대폰 자동완성이 내가 쓴 "늘 사랑해"를 "늘 사망해"로 바꿔놓은 거였다. 그것도 편지 맨 첫 줄을. 나는 그걸 확인도 안 하고 보낸 거다. "늘 사망해"로 시작하는 고백을 받은 그 사람은, 나중에 고백 편지인 줄도 모르고 협박 편지인 줄 알았다고 했다. 경찰에 신고할 뻔했다고. 인생을 건 고백이 자동완성 오타 하나로 살인 예고가 됐다. 다행히 진심은 전해졌지만, 그 첫 줄은 두고두고 놀림감이다.
친구들과 거하게 술을 마신 밤이었다. 취기가 오르니 평소 좋아하던 그 사람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리고 나는 폰을 들어, "너 좋아해"를 무려 30번이나 톡으로 쏟아부었다. 변주를 곁들여가며 온갖 형태로. 다음 날 아침, 숙취와 함께 밀려온 건 끔찍한 후회였다. 떨리는 손으로 톡 내역을 확인하려는데, 그 사람한테 먼저 톡이 와 있었다. 내가 보낸 고백 톡 30개를 전부 캡처해서 보낸 거였다. 그리고 한마디. "술 깨면 후회하고 없던 일로 할까 봐, 증거 남겨뒀어." 도망갈 길을 완벽하게 막아버린 거다. 빼도 박도 못하게 된 나는, 결국 그 캡처본 앞에서 진짜 고백을 다시 해야 했다. 취중진담이 운명이 됐다.
썸의 절정, 처음으로 손을 잡은 그 로맨틱한 순간이었다. 손끝이 닿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분위기가 완벽했다. 바로 그때, 긴장이 풀렸는지 내 몸에서 소리가 났다. 그것도 아주 크게. 정적이 흘렀다.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손을 잡은 채로 굳어버린 나는, 그대로 땅이 꺼져 사라지고 싶었다. 분위기고 뭐고 다 망쳤다는 절망이 밀려왔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잠깐 멈칫하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나도 아까부터 참고 있었어." 그러고는 정말로 같이 뀌었다. 우리는 손을 잡은 채 한참을 깔깔 웃었다. 그 민망한 순간에, 우리는 오히려 가장 편한 사이가 됐다. 진짜 인연은 그렇게 시작된다.
썸 타는 사람한테 어떻게 답장할지 도무지 감이 안 와서, 친구한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그 사람이 보낸 톡을 캡처하고, 내가 쓰려는 답장 초안을 적어서 "이렇게 답장하면 돼?" 하고 친구에게 보냈다. 아니, 보냈다고 생각했다. 전송하고 0.5초 뒤에 채팅방 이름을 보고 피가 식었다. 친구가 아니라, 바로 그 사람한테 보낸 거였다. "이렇게 답장하면 돼?"라는 그 메타적인 문장 그대로. 그 사람은 자기한테 보낼 답장을 자기한테 검수받은 셈이 됐다. 황급히 삭제했지만 이미 읽혔다. 나는 한동안 그 사람 얼굴을 못 봤다. 답장 하나 보내려다, 답장 연습하는 모습까지 다 들켜버린 대참사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프로포즈를 하던 날이었다. 반지를 꺼내 들고 무릎을 꿇었는데, 긴장이 극에 달한 나머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입에서 튀어나온 이름이 지금 애인이 아니라 전 여친 이름이었다. 정적이 흘렀다. 1초, 2초, 3초. 세상에서 가장 길고 끔찍한 3초였다. 나는 그대로 죽고 싶었다. 다행히 그 사람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그래서 누구한테 프로포즈하는 건데?" 하고 넘어가 줬고, 결국 받아줬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결혼 10년 차인 지금까지도,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그날의 그 이름이 소환된다. 평생 갈 흑역사다.
썸 타던 사람과 길을 걷던 날이었다. 잘 보이고 싶어서 최대한 우아하게, 모델처럼 걸으려고 신경 쓰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서 발이 꼬여 그대로 자빠졌다. 수습이라도 하려고 벌떡 일어나며 둘러댔다. "어? 여기 빙판이네요, 미끄러워라." 그런데 그날은 한여름, 8월의 뙤약볕 아래였다. 빙판이 있을 리가 없었다. 더 민망해졌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그 사람이 배를 잡고 한참을 웃더니, 그날 이후로 부쩍 더 다정해졌다. 나중에 들으니, 그 어설픈 변명이 너무 귀여워서 정이 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사귀게 됐다. 흑역사가 인연이 된 셈이다.
한창 좋은 분위기로 데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레스토랑에서 점원이 "손님" 하고 부르자, 나는 무심코 "네 엄마!" 하고 대답해버렸다. 정적. 점원도, 나도, 앞에 앉은 그 사람도 모두 굳었다. 평소에 엄마랑 워낙 자주 통화를 하다 보니, "네" 하면 자동으로 "엄마"가 입에 붙어버린 거였다. 처음 보는 점원한테 엄마라니. 그 사람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빵 터졌다. 무려 5분을 쉬지 않고 웃었다. 밥 먹다 말고 눈물까지 닦으면서. 덕분에 어색하던 데이트 분위기는 확 풀렸지만, 나는 한동안 "네 엄마"로 놀림받았다. 입에 붙은 습관이 이렇게 무섭다.
장거리는 아니지만, 그날따라 보고 싶어서 영상통화를 걸었다. 침대에 누워 편하게 통화를 시작했다. 그 사람은 별말 없이 차분하게 통화를 받아줬다. 30분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통화를 끊었다. 그제야 화면을 보고 깨달았다. 나는 셀카 모드인 줄 알았는데, 카메라가 후면을 향하고 있었다. 즉, 통화 내내 그 사람한테 내 얼굴이 아니라 우리 집 천장만 보여준 거였다. 그 사람은 30분 동안 아무 말 없이, 내 방 천장 벽지 무늬를 감상하며 내 목소리만 들었던 거다. 왜 말을 안 했냐고 물으니 "천장 무늬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어" 하며 놀렸다. 그날 이후로 영상통화 걸 땐 화면부터 세 번 확인한다.
100일을 챙기듯 그 사람 생일을 특별하게 챙겨주고 싶었다. 케이크를 예약하고, 선물을 준비하고, 깜짝 이벤트까지 완벽하게 세팅했다. 그렇게 D-day, 케이크를 들고 짠 하고 나타났다. 그런데 그 사람의 반응이 어리둥절했다. "어… 내 생일 다음 달인데?" 알고 보니 내가 생일을 한 달이나 앞당겨 잘못 외우고 있었던 거다. 케이크에 불까지 다 붙여놓고 머쓱해졌다. 그런데 그 사람이 빵 터지더니 말했다. "예행연습 제대로 했네, 한 달 뒤에 진짜로 또 해줘." 그리고 정말로 한 달 뒤, 진짜 생일에 한 번 더 챙겨야 했다.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생일을 두 번 챙겨 받은 셈이다. 내 실수가 그 사람한텐 개이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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