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만큼 깊어진 마음
3년이었다. 시차와 거리, 비행기 값과 그리움을 견디며 버틴 3년의 장거리 연애. 그리고 마침내, 그 사람이 내가 사는 도시로 이사를 왔다. 같이 살게 된 첫날 아침이었다. 눈을 떴는데, 바로 옆에서 그 사람이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화면 너머가 아니라, 손을 뻗으면 닿는 거리에. 그 얼굴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남들에겐 너무 당연한 일상이, 우리에겐 3년을 기다린 기적이었다. 아침에 옆에서 자는 얼굴을 보는 것, 같이 밥을 먹는 것, 손을 잡고 산책하는 것.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게 우리였고, 이제 우리는 매일이 졸업식이다.
한 달 만의 만남이었다. 입국장 게이트 앞에서,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그 사람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안내가 뜨고도 한참, 사람들이 줄지어 나왔다. 드디어 게이트가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보인 순간, 나는 캐리어고 뭐고 다 제치고 달려가 그 사람을 끌어안았다. 게이트 열림부터 품에 안기기까지, 길어야 3분. 그 3분을 위해 우리는 30일을 버텼다. 매일 밤 영상통화로, 손편지로, 시차를 넘나들며. 거리는 만남을 더 진하게 만든다. 늘 곁에 있었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그 품의 온기와 안도감. 공항은 우리에게 가장 뜨거운 장소다.
장거리 연애 기념일이었다. 멀리 있으니 선물도 못 주고받겠거니 했는데, 그 사람이 톡으로 GPS 좌표 하나를 보내왔다. 숫자와 소수점이 나열된, 무미건조한 좌표값이었다. 무슨 뜻인가 싶어 지도에 그대로 찍어봤다. 그리고 그 위치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건 몇 년 전, 우리가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장소의 좌표였다. 그 사람은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다는 뜻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기념일이 되자 우리가 시작된 그곳을 찾아가 나를 생각하고 있다는 거였다. 좌표 하나에 담긴 그 마음에, 나는 한참을 그 지도 위 점을 바라봤다. 거리는 멀어도 시작점은 같았다.
유난히 힘든 하루였다. 야근에 치이고 마음도 지쳐서, 끼니도 거른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멀리 있는 그 사람에게 "오늘 너무 힘들다"고 톡만 보내고 폰을 내려놨다. 그런데 30분쯤 뒤, 우리 집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여니 따끈한 야식이 배달돼 있었다. 그 사람이 자기 나라에서, 내가 사는 도시의 배달앱으로 주문해 보낸 거였다. 직접 올 수 없으니 음식이라도 보낸 거다. 멀리 떨어져서도 내 끼니를 챙기는 그 마음에, 나는 치킨을 앞에 두고 울어버렸다.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도 어떻게든 나를 돌보려는 사람. 그날 그 치킨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였다.
우리 사이엔 7시간의 시차가 있다. 내가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 그 사람은 막 점심을 먹는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의 인사는 늘 어긋난 듯 맞물린다. 내가 "잘 자" 하면 그 사람은 "맛있게 먹어" 하고, 그 사람이 "좋은 하루 보내" 할 때 나는 이미 꿈속이다. 매일 그렇게 두 개의 시간이 교차하며 흘러간다. 처음엔 이 어긋남이 서럽기도 했다. 같은 순간을 살 수 없다는 게. 그런데 이제는 안다. 같은 하늘 아래가 아니어도, 서로의 시간을 챙겨주는 마음만 같으면 됐다. 7시간의 거리도 마음 앞에선 별것 아니었다.
주말 밤이면 우리는 같은 영화를 본다. 같은 극장은 아니다. 각자의 집, 각자의 노트북 앞에서. 영상통화를 켜놓고 "준비됐어? 셋, 둘, 하나!" 카운트에 맞춰 동시에 재생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두 화면에서 똑같은 장면이 똑같이 흘러간다. 웃긴 장면에선 동시에 웃고, 슬픈 장면에선 같이 훌쩍인다. 떨어져 있어도 같은 시간을 산다는 것. 그게 장거리 연애에서 우리가 찾아낸 작은 기적이다. 옆에 앉아 팝콘을 나눠 먹진 못해도, 같은 순간 같은 장면에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 그거면 충분했다.
지도 앱을 열면, 그 사람이 사는 동네에 노란 별표가 찍혀 있다. 가본 적도 없는 곳인데, 나는 그 별표를 매일 누른다. 로드뷰를 켜서 그 사람이 매일 걷는 골목을 따라 걷는다. 출근길에 지나는 편의점, 자주 간다던 카페, 집 앞 횡단보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거리를, 나는 화면 속에서 매일 산책한다. '여기서 그 사람이 커피를 사겠구나' 상상하면서. 발은 못 가도, 마음은 매일 그곳에 가 있다. 언젠가 직접 그 골목을 그 사람과 손잡고 걸을 날을 그리며, 오늘도 나는 로드뷰 속 낯선 거리를 익숙하게 걷는다. 그리움은 그렇게 지도 위에 별표로 남는다.
톡 한 번이면 1초 만에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굳이 손편지를 쓴다. 그것도 국제 택배로 보낸다. 펜을 들고 종이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고, 봉투에 담아 부치면 답장이 오기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 답답할 법도 한데, 나는 그 기다림이 좋다. 편지가 도착할 날을 손꼽으며 기다리는 그 시간까지가 사랑인 것 같아서. 빠른 톡에는 담기지 않는 게, 느린 손편지에는 담긴다. 글씨의 떨림, 종이에 밴 냄새, 고민한 흔적의 지운 자국까지. 그 사람의 손이 직접 닿았던 종이를 받아 드는 순간, 일주일의 거리가 한순간에 좁혀진다.
우리 둘의 핸드폰엔 똑같은 알림이 설정돼 있다. 서로의 도시를 잇는 항공권 가격 알림이다. 표값이 떨어지면 즉시 알림이 뜨도록 해뒀다. 그래서 우리에게 항공권 가격 인하 알림은, 단순한 할인 소식이 아니다. '곧 만날 수 있다'는 신호다. 알림이 울리는 순간, 둘 다 동시에 캡처해서 보내며 "이때 어때?" 하고 들뜬다. 세상엔 수많은 푸시 알림이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설레는 알림은 단연 이거다. 광고도, 뉴스도 아닌,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앞당겨주는 숫자. 표값이 떨어졌다는 그 짧은 알림 하나에, 한 달의 그리움이 희망으로 바뀐다.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 뒤로, 나는 매일 그 나라의 환율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경제에 관심도 없던 내가, 이제 환율 그래프를 들여다본다. 그 사람 월급이 오르길 바라고, 그 나라 물가가 안 오르길 바라고, 환율이 우리 만남에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길 바란다. 표값도, 송금도, 다음 만남의 비용도 다 그 숫자에 달려 있으니까. 사랑을 하면 그 사람의 나라 경제까지 걱정하게 된다는 걸, 예전엔 몰랐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을 둘러싼 세계 전체를 함께 신경 쓰는 일이었다. 오늘도 나는 아침에 일어나 그 나라 환율부터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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